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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3-12-25-주일학교-고등부-교사를-내려놓으며.md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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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일학교 고등부 교사를 내려놓으며...
2003-12-25 15:46
⊙ 삶의 작은 일들

끝날 것 같지 않던 올 한해도 이제 끝이 보이네요.

너무나 갑작스럽게 주어진, 그래서 참 원망도 많이 했고, 하지만 한 번 해보자며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총무직도 인도 전도여행 막 다녀온 2월 한달 새에 샤론의 밤서부터 헛다리를 짚고, 반사도, 총무도 제대로 하지 못한 그런 속에서 매일 매일 정체성 싸움을 하며 머물러 있으면서

제게 맡겨주신 지체들도 채 돌보지 못하면서 내가 여기 왜 있나 하는 상념에 사로잡히곤 했을 때,

2년 전, 졸업반인데도 불구하고 대표리더를 하던 한 YWAM 선배 누나가 해준 말을 기억하며 힘겹게 힘겹게, 꾹 꾹 머물러있었죠.

'정수야, 헌신은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걸 하.는.게 아니라, 단지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하신 곳에 머물러 있는 것, 그것인것 같아.' 그렇다고 올 한해 있으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고만은 할 수도 없는 것 같네요. 순종은, 즉시로, 온전히, 기쁘게 하는 것이니까요.

하지만, 모든 시간들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 서서 뒤돌아보면, 그저 머물러있었던 것만으로도 의미있었던 것 같네요. 내 뜻을 힘겹게 억누르고 있으라 하신 곳에 있는 것.

다만 마음 한켠에 지우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는 그네들의 이름. 태영, 준석, 종명, 은혜, 민지, 은미, 초이 그 이름들이 하나 하나 떠오를때마다 미안함과 회한이 스며듭니다.

아... 주님...

이번주면 졸업예배죠. 이제 고등부 교사는 내려놓게 됩니다. 청년부 총무만 해도 벅차다는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죠. 아무래도 이번에 내려놓으면 한동안은 교사를 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. 누군가를 책임지고 가르치기에는 내가 너무나 부족하다는걸 뼈져리게 깨달았기 때문이죠. 물론 주님께서 부르신다면 그때는 나의 능력에 얽매이지 않고 응답해야겠지만... 이 한해동안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놓고 많이 울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어야 할 때 오히려 주저앉아버렸던 것들을 생각하면 한동안은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네요.

떠날 때를 아는 사람, 물러날 때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... 사실 올해 진작 떠났어야 했었다고 생각은 하고, 올해의 일들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는지는 아직 확신은 없네요.

내년에는 참 좋으신 선생님들이 오시네요. 저보다 더 안정적이고 깊이가 있으신 분들이죠.

참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했었는데... 더 많이 시간을 보내고 싶고, 함께 예배하며 그 감격 속에 더 오래 머물고 싶고, 그 시간들을 공유하며 풋풋하게 서로 자라갔으면 했는데... 책상 앞에 놓은, 소록도에서 찍은 그 흑백 필름 사진처럼 함께 그 시간들을 추억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했는데

주일만 만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, 일주일에 한두번 만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, 내 삶을 통째로 열어보여줄 수 있는 그런 친구, 선배, 멘토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네요.

아... 주님...

주 예수님은 나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셨지만 나는 내게 해가 되는 것은 하지 않는 사람인걸요.

주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셨지만 나는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만 사랑하는 사람인걸요.

주 예수님은 아버지를 보이기 위해 노력하셨지만 나는 내 형상을 마음 속에 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인걸요.

스스로 많이 성장했다고 여겼지만, 아직 어설프게라도 세례요한이 되기에는 많이 부족한가봅니다.

이제 청년부에서나 보게 되겠네요. 가끔 마주치겠죠. 물론 교회라는건 부서가 달라진다고 해서 관계가 더 멀어지면 안되지만, 그래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지겠죠.

고등부를 많이 사랑하세요. 나의 삶의 터전으로 삼으세요. 뿌리가 없는 신앙을 가지지 말고, 울고 웃고 고민하고 결정하는 그 삶의 편린들이 이 곳에서 이루어지도록. 그래서 내 삶의 역사를 함께 한 곳이 되도록.

내 능력과는 상관 없이 나를 고등부의 한 교사로 쓰기에 합당하게 여기신 하나님께, 이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하시고, 많은 추억들을 가지게 하시고, 많이 배우게 하신 것을 인해 감사드립니다.

그리고, 여러분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.


"결과가 어떠해도 주님만 빛나시고 주님 평안 내 안에 있으면 그것이 바로 승리라"